아침일찍 코사멧으로 떠나기 위해 바리바리 짐을 챙겨 전날 예약한 여행사 앞으로 향했다. 예전의 경험상 8시까지라면 꼭 10분 전까지는 오셔야합니다 하고선 10분은 족히 더 기다리게 하던데, 이번에도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혹시 사기당한 것 아닐까 라는 의심이 들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니 짜잔 하고 버스 태우는 인간이 나타났다. 이런 경험이 처음인 동생은 안절부절 못했는데 그것도 무리가 아닌것이, 그 이른 시각엔 여행사도 문을 열지 않았고 손에 들고 있는 전화번호는 문닫힌 그 여행사 내부에 있는 전화기였으니 말이다.
예전엔 조그만 봉고에 구겨져서 갔었는데 이번엔 럭셔리 2층 버스다. 탑승 손님은 나와 동생 빼고는 모조리 미주나 유럽 등지에서 온 백인과 흑인들. 1층에는 배낭을 가득 싣고 2층 맨 앞자리에 자리잡아 처음엔 신났는데, 방콕의 살인적인 교통체증과 가운데서 뿜겨져나오는 에어컨 때문에 서서히 고통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이건 코사멧 도착해서 받았던 충격에 비하면 새발의 피.
<방콕에서 반페 가는 도중 휴게소에서>
여차저차 대부분 코창으로 향하는 그들을 뒤로 하고 반페의 선착장에 안착했다. 어느새 코창이 대세가 된 것 같았는데, 2005년판 여행책자에서는 그 정보를 거의 얻을 수 없었기에 태사랑에서 좀 더 열심히 검색에 임하지 않은 자신을 탓할 수 밖에 없었다. 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니 이미 사람들로 꽉찼고, 역시 우리와 태국 부부 빼고는 모두 백인들;;
<앞에 보이는 섬이 코사멧. 금방 도착할 것 같지만 이삼십분은 족히 걸린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썽태우를 타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가본 곳에 대한 실망을 없애기 위해 아오파이로 향했다. 숙소는 역시 6년전 묵었던 씨 브리즈. 해변으로 얼른 나서고픈 마음에 방갈로에 짐 내려놓고 다음날의 스노클링 트립 신청한 후 바닷가로 꼬꼬. 앗 그러나 아오파이는 더이상 예전의 청명한 바다가 아니었다. 동생이 투덜거리며 부산과 다를바가 없다고까지 -_- 어이 그건 너무 심하잖아. 젠장....부두쪽(섬입구)으로 가면 더 실망할 것 같아서(물자체는 아주 더럽진 않았으나 쓰레기같은것이 꽤 떠있었다.ㅠ) 반대쪽으로 향했다.
조그만 다리를 건너 다른 만 으로 가니 거긴 다행히도 전처럼 깨끗해서 수영복으로 갈아입으러 다시 방으로....배낭을 열고 수영복을 꺼내려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 면세점에서 사온 대빵 싸이즈 향수가 들어있는 비닐을 들었는데, 엄청나게 가벼운거다. 떨리는 손으로 겉비닐을 보니 이미 뜯은 흔적이 있고, 상자밑쪽을 열어서 향수만 빼갔다. 이런 죽일놈들!!!!!!!! 동생에게 뭐 잃어버린 거 없냐고 빨리 뒤져보라고 했더니 자기 배낭 안쪽 주머니에 넣어둔 지갑에서 한국돈 4만원 가량 빼갔댄다. 배낭이 우리 손을 떠나있던 때는 2층 버스와 배와 도착해서 잠시 나갔다온 사이. 세번인데 언제 당한건지 모르겠다. 다행히 여행경비와 여권, 카메라 등 고가의 귀중품은 무겁더라도 언제나 들고 다녔기에 피해가 없었으나....찜찜한 기분을 어찌할 수 없었다. 일단 숙소측에 항의하고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나갔다. 여행다니다 도둑맞은 적은 처음.
많은 이들이 꺄꺄거리며 물위로 고개 내놓고 즐겁게 물놀이 중이었다. 우리도 입수!! 속엔 비키니 입었으나 부끄럼많은 처자들이기에 난 4피스, 동생은 긴 흰 티셔츠를 겉에 걸치고 얌전하게~ 비키니 입는 분들 그 용기 부러워효 >ㅅ<// 내 몸매가 설사 하이디클룸 급이라도 어쩐지 비키니만 입고 나서지는 못할듯 쿨럭.
캐리비안 베이의 파도풀과 같이 큰 파도과 끝없이 밀려오는지라 누워서도, 엎드려서도 아주 신이 났다. 배영에 자유형에 평형까지 해가며 갖고간 물안경을 착용했더니 동생이 쪽팔리다며 난리다. 훗, 뭐 어때.
물장구 치는 사이에 어느덧 노을이 지고 있다. 적도 근처라 적란운이 많다고 하던데 역시 노을도 이런식.
주린배를 움켜쥐고 여행의 최고 즐거움 중 하나인 식사를 만끽하러 나섰다. 화보에서 튀어나온 듯한 그림같은 백인 4인 가족들도 옆에 착석. 파도가 철썩이는 남국의 밤바다에서 친절한 서비스와 함께 맥주를 꺾어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천국에서의 모습입니다. 천사랄까;; (퍽퍽)>
더 놀고 싶었으나 밧데리 용량이 어느새 또 다 된 동생님 덕분에 이른 잠자리를 청할 수 밖에 없었다. 모기향을 있는대로 피워놓고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데, 낮에 도둑당한 것이 자꾸 생각나 어쩐지 무서웠다. 로밍해 간 폰으로 인도네시아에 있는 친구에게 불안함을 문자로 호소했더니 걱정스런 전화가 왔다. 아 정말 글로벌한 세상. 친구 말로는 태사랑에서 본 글에 의하면 얼마전 여자 두 명 코사멧에서 안좋은 일 당할 뻔했었다고;; 으악;; 일본 여자 두 명은 당했다고;; 으아악
낯선자가 문 두들겨도 절대 안열어줘야지 다짐하며 새벽까지 뒤척이며 '눈먼자들의 도시' 다 읽어버리고 지쳐 쓰러졌다...처음으로 배낭여행에 대해 무서움을 느끼며 이역만리 의지할 곳 없는 섬에 오도카니 있단 사실을 인지했던 밤.
간밤의 피로로 인해 늦게까지 푹 자고 숙박시 공짜로 제공되는 아침식사를 했다. 새벽의 카오산이 어딘지 황폐하고 우울한 느낌이었던지 동생은 아침의 활기찬 거리를 보며 적잖이 만족했고. 사진은 싸얌 오리엔탈 인 1층에서 바라본 카오산 로드.
다음날엔 코사멧으로 가야했기에 현지 여행사에 예약하고 왕궁과 에메랄드 사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예전 여행시 들렸던 곳이었으나 카오산에서의 거리 등 여러 여건상, 또한 '관광'의 취지에 가장 걸맞는 장소라는 점에서 한번쯤 더 보는 것도 뭐...라는 심정이었달까. 물가가 비싸진 건지 우리가 예약한 곳의 가격만 어마어마한 건지 코사멧행 버스+배 인당 600밧에 예약했다. 태사랑을 완전히 정복하고 갔더라면 좋았을걸, 후회해도 늦었다. 역시 배낭여행의 핵심은 정보력이다. 갔던 길 또 가는 건데도 어찌나 길치인지 또 헤맸다. 내려쬐는 태양빛에 어깨는 익어만 가고, 깜박하고 선블럭을 바르지 않은 살갗은 지글거렸으나 어찌어찌 물어서 입구 찾아 입성 전 사진 찰칵. 왓포로 들어가는 길과 헷갈렸지 싶다. ㅜ.ㅠ
반바지, 나시 등이 금지되는 곳인지라 옷 한 피스에 100밧씩 데파짓으로 내고 빌려입었는데, 아아...간지따윈 바라지도 않아, 안그래도 더운날 상하의가 어찌나 두껍한지 쪄죽기 알맞더라. 구석에서 둘러입은 랩치마 사이를 벌려쥔 채 훅훅거리며 휴식도 취해가며 여전히 화려한 황금가득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또 이런 곳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포즈 따라하기 아니겠능가?
관광지의 특징은 볼거리가 많지만 쉽게 질린다는 거다. 구경거리 스팟을 옮겨다니는 여행을 굉장히 싫어하는 편이라 이런 종류는 이제 그만 보기로 했다. 왓포나 왓아룬 등을 포기하자고 말은 안했어도 동생의 일찌감치 바닥나는 체력은 왕궁 입구 찾느라 이미 한칸남은 밧데리 수준이라 뭐...
굶주린 배를 안고 왕궁 입구 맞은편의 식당에서 한끼를 해치운 후 태사랑에서 부랴부랴 출력해온 "70밧으로 하는 방콕 운하+강 반나절 투어" 를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현지인들의 사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투어의 가장 큰 장점. 일단 타창(선착장)으로 뚝뚝을 타고 달렸다. 처음 타보는 뚝뚝에 동생 급흥분. 뚝뚝 흥정은 이미 6년 전에 마스터했는지라 어이없는 가격 부르는 녀석에게 당연히 50% 미만에 해당하는 값 제시하니 역시나 오케이다. 훗 누가 당할 줄 알고? 왕궁과 타창은 사실 가까운 거리이고 말이지. 방야이로 가는 배편을 물으니 뽑아간 자료와 달리 4시에 배가 있단다. 배 앞쪽에 앉아야 물이 안튀어서 구경하기에 좋다고 했기에 30분 전에는 꼭 돌아오리라 맘먹으며 선착장 앞에 펼쳐진 노점시장이라고 해야하나-둘러보는 재미를 만끽했다.
운하버스에 탈 수 있게 되니 이미 선착장에 파다해진 우리의 목적지 방야이..-_- 표파는 아저씨 및 배태우는 아저씨 등이 모두 우릴 보더니 저거 타라고 난리시다. 아아 친절한 태국사람들 ㅜ.ㅠ 그러나 맨 앞자리에 타려던 계획은 한국인 모녀의 날쌘 동작 앞에 무너지고;; 겨우 두번째 자리를 차지했는데 우리 뒷자리도 한국여인 셋이 자리잡았다. 금, 은, 동 모두 석권했달까요 후후 모두들 태사랑에서 정보를 얻은 듯 했다. 배가 찰 때까지 기다린 후 4시 조금 넘어서 출발!! 엄청난 속도에 신이 났다. 수상가옥에 사는 분들이 거의 개인택시처럼 운하버스를 이용해서 자기네 집앞에서 바로 내리는 광경이 정겹더라. 장을 보신 아주머니, 하교하는 학생, 퇴근하는 아저씨 등이 주 이용고객이었고 운하에서 멱을 감는 어른 아이 모두 뉘엿한 해와 함께 어쩐지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 것 같아 부럽기도 했다. 돈은 중요하긴 하지만 행복의 필수조건이 아님은 분명하다.
40여분간 방꺽너이 운하를 따라 한참을 달린 후 방야이에 도착해서는 볼거리가 그다지 많지 않았기에 선착장에서 사온 과일을 벤치에 앉아 먹었다. 나중에 동생 얘기를 들어보니 옆벤치에 앉아있던 여중생 무리들이 우리를 홀낏홀낏 보면서 자기네들끼리 웃고 떠들었다고 한다. 으음...나는 왜 몰랐던게냐. 확실히 관광객이 득실대는 곳을 떠나니 현지인들의 관심이 외국인에게 집중된다. 바로 타남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러나 정류장 위치를 모르겠다;; 맞은편에서 오는 이쁘장한 아가씨에게 길을 물었더니 영어를 모르는지 수줍은 표정으로 바디랭귀지를 구사한다. 대충 방향잡아 걸어가서 '타남!타남!'외치니까 근처 사람들이 여기서 타는 거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버스는 금방왔다. 안내양에게 돈을 지불하고 자릴잡으니 또 시선집중. 하..하하 뒤에 앉았던 할아버지 한 분은 친히 우리 뒷자리로 옮겨오시기까지;;(이것도 관찰력 제로인 나는 몰랐던 사실이고 동생은 그런 관심이 부담스러웠다고~ 모르는게 약)
타남에 도착하니 또 노점이 즐비하다. 나쵸같은 스낵 위에 생크림을 얹은 과자를 사먹으며 논타부리로 곧 건너가기로 했다. 물을 사러 들어간 편의점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의 호기심어린 시선. 나가는 뒷통수에 대고 어색하게 땡큐 하는 한 아가씨에게 마주보며 땡큐 해주니 좋아라 웃어젖힌다. 우우 귀여워요 아가씨들 >ㅅ<// 강 건너편 논타부리로 가는 배를 타니 불타는 시선이 느껴진다. 앗 맞은편에 탑승한 저 사람은 타남행 버스를 알려줬던 그 아가씨!? 남자친구와 함께 우릴보며 뭐라뭐라하며 얘기하고 있던 차였다. 반갑게 인사를;; 꺄꺄 논타부리로 가서는 또 노점에서 간식거릴 사먹었다. 여행하며 쓴 돈의 대부분은 먹는 것에 투자된 것으로 똥이 되고 말았다, 하! 논타부리 선착장에선 말레이시아 아줌마 관광객들의 관심 집중. 이놈의 인기는....함께 사진도 찍고 먹을 것도 얻어먹고 즐겁기도 하지만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했던 합석과 함께 짜오프라야 강의 야경을 감상하며 카오산으로 돌아와서는 실크바에서 간단히 칵테일과 맥주를 들었다. Hello 태국에서 소개된대로 음악이 정말 끝내줬다. 하우스와 일렉, 애시드 재즈로 이루어진 선곡은 환상 그 자체였는데, 방콕은 물론이고 코사멧에서도 음악에 의한 귀의 호강은 그칠 줄을 몰랐다...
2001년 6월에 태국을 방문한 이후 6년만에 다시 찾게 되었다. 원래 가족여행으로 일본 온천여행을 생각했었으나 부모님의 사정으로 인해 동생과 나 둘만의 여행으로 변경되었기에 나의 강력한 주장으로 태국으로 결정. 코따오 등의 남부해안쪽에 가고팠으나 자금과 시간 고려 끝에 방콕과 코싸멧만 방문하게 되었네라. 콰이강의 다리로 유명한 깐짜나부리는 지난 여행때 갔었으므로 체력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 아유타야도 가고팠지만 결국 못갔다는.
9월 5일 저녁 9시 15분 비행기로 인천공항을 떴다. 석양을 보며 달리는 공항버스 속에서 어딘가로 여행을 떠날 때의 설레임을 간만에 만끽하며 이미 행복하기 시작했다.....
중국동방항공의 기내식은 기대 이상도 이하도 아닌 평이한 수준이었고 나름 홍어끼운 샌드위치 등을 기대했던 우리에겐 조금 실망이었달까. 잠이 오지 않아 공항에서 사간 '눈먼자들의 도시'의 1/3 를 읽어버렸다. 해변에서 가오잡고 보려했던 책이건만..!
태국시간으로 새벽 1시경, 우리 시간으로 새벽 3시쯤 신공항인 쑤완나폼 공항에 도착, 태사랑에서 얻은 정보대로 3층 출국장으로 올라가 막 손님 내려주는 택시를 잡아타고 강력하게 미터를 외치며 카오산 로드로 향했다. 6년전 돈므앙 공항에서 기차와 뚝뚝으로 이동하던 경로와는 사뭇 다른 스타트. 싸얌 오리엔탈 인에 체크인하고 여장을 풀었다. 너무나 그리웠던 카오산로드의 노점에서 파는 팟타이(태국식 볶음국수)를 25밧, 우리돈으로 750원 정도 주고 사먹으니 드디어 태국이구나 새삼 기쁨이 넘실.
오늘 밤 비행기로 출발합니다. 6년만에 다시 찾게되는 태국....그때와 유사한 루트로 움직이게 될듯요. 그간 방콕에는 지하철도 생기고, 돈므앙 공항이 아닌 스완나폼이라는 새로운 공항으로 입국하는 등 변화가 있네요. 그래도 저렴한 물가만큼은 그대로이길.."Hello 태국" 요 책의 2005년 판을 부산에서 동네 서점 돌며 겨우 겟하였네요. 이미 절판된 지 오래라 큰 서점엔 없더라구요. 다른 태국 여행서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그래도 2001년 당시 보던 이 책이 너무 유용했기에~
지난주, 너무 심하게 달려온 고로 이번주는 시작부터 맛이 가있었기에 그 기를 충전할 겸 다 떨어진 단풍이나마 냄새 한번 맡아볼까 싶어 근처 아무데나 나무있는 데로 가려다 어디까지 갔느냐! 후훗 무려 대청댐. 들어나봤나 대청댐. 생각해보니 몇 년 전에 한번 가보긴 했더라만은 뭐 어땠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고 - 소개팅을 시켜주러 대전에 내려갔던 김에 들렸던 듯 싶다 - 이번에 가니 저엉말 좋더라. 남들 잘 몰라서 안 가는 곳 '충북 보은군 회인면' 이런 타이틀을 단 장소였다. 억새인지 갈대인지가 잔잔한 물가에서 가을햇살에 나부끼는 모습은 그 자체로 절대적 미였달까, 가슴이 저리더라.
근처를 돌아다니다보니 '개주의' 표시가 있는 엄청난 저택도 발견. 무작스런 럭셔리 집을 떡하니 박아둔 것이 아닌, 진정 자연과의 조화가 무엇인지 좀 아는 듯한 분이 꾸며놓으신 별장같았다. 그 고급스러운 취향과 모든 마감재 및 조형물들을 보아하니 보통 재력과 센스로는 안되겠던데....야트막한 언덕에 집이 있었고, 그 집과 물가 사이에는 인공적이지는 않지만 일부러 파둔 것이 분명한 수련이 가득한 연못, 자연미를 그대로 살린 벤치 두어개가 놓여있었고 그 앞에는 이것저것 자라고 있는 텃밭도 보였다. 개짖는 소리만 빼면 완벽. 가끔 짖는 것을 멈출 때면 '무음'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명확히 깨달을 수 있는 침묵이 찾아와 오히려 귀가 먹먹했다.
태어나 두번째로 먹어보는 송어회도 그 맛이 일품이었다. 강원도 쪽에선 무지 비쌌던 것 같은데 여기선 어쩜 그리 가격도 착한지. 송어회 1키로에 매운탕, 밥 하나, 천연사이다 하나, 시원소주 하나 이렇게 하여 토탈 2만원. 서울서는 이돈으로 어디 삼겹살이나 제대로 먹겠삼?
독서실에 왔던 차림 그대로 달려나갔기에 감지 않은 머리는 제멋대로 뻗치고 말그대로 수험생 패션인 것은 마음 쓰이지 않았으나 카메라를 가지고 가지 못한 것은 근래들어 가장 아쉬운 일이었다. 청주의 그 유명한 가로수길도 간만에 찾으니 어쩐지 나무통이 더 굵어진 것도 같고. 하지만 시기는 조금 늦었다. 이미 앙상 모드였으니까.
수험생인 상황이 딱히 나쁘진 않다 이런것만 봐서는. 기분내킬 때 맘대로 떠날 수 있는 건 아무나 못하는 것 아니겠어? 리스크가 큰 입장이긴 하다만 가끔 이런 정취 즐기는 것 생각하면 나름 상팔자인게다.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랄 수도 있는 것이 하나 생겼긴 하더라. '상수도 보호지역' 보면서 아, 공법상 제한 중 일반적 제한이니까 보상할 때 제한 반영해서 평가해야겠구나. '도로' 냈다 그러면 저 도로 과연 언제 냈을까, 박정희전두환 이런때 냈다면 미불용지일 가능성이 있겠는데? 이런식. 지식 습득은 어쨌거나 세상 보는 눈을 넓혀준다.
지정문답이란 것이 무얼까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아직도 진정한 블로거의 길로부터는 몇 % 부족한 위치에 있는 듯 합니다. 최근, 공부에 그나마 살짝 버닝 단계라 잠깐 접속해서 마이 밸리 휘리릭 훑고 나가는 것이 다였기에 문답받은 것 이제야 확인했습니다. 추석 특집 부산으로의 열흘 귀향을 떠나기 전에 쌈박한 마무리 할 수 있게 되어 솔밤님께 감사드려요. 호호
1. 최근 생각하는『몽골』 한달도 더 전에 다녀온 몽골이라서. ^^;; 패키지 여행 특성상, 게다가 특이한 요소가 가미되었었기에 여행 당시에는 얼른 돌아와 버리고 싶다, 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쁜 기억은 역시 쉽게 잊혀지나봅니다. 이젠 사진과 머릿속에만 남아있는 그 끝없는 초원과 하늘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2. 이 『몽골』에는 감동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생활수준은 현재 우리의 그것보다 많이 뒤쳐져있긴 했으나, 한때 전세계를 제패했던 몽골제국의 주역들이 아니겠습니까. 공산사회의 지도자였던 동상 바로 앞에 징기스칸과 그 후예들의 더 큰 동상을 세우고 있고 현재 일본 스모계를 평정한 몽골출신 스모선수의 거대 사진 역시 펄럭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머지않아 낡은 이념따윈 던져버리고 과거의 위용을 되찾을 무시무시한 저력을 드러내겠구나 싶었습니다.
3. 직감적『몽골』 말, 양고기, 시퍼런 몽고반점
4.좋아하는『몽골』 몽골로 간 것은 아빠의 의지였습니다. 전 푹 쉴 수 있게 태국을 주장했었지만, 그저 휴양하는 바닷가보다는 때로는 화려한 과거, 초라한 현실, 웅대한 미래를 꿈꾸는 나라의 현재진행형 발전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싶더군요. 뭣보다도 식사때마다 먹는 고기(우훗♡)...와 자연경관이 좋았습니다.
5. 이런『몽골』은 싫다 살 물건이 없습니다. 백화점에도 캐시미어나 양가죽 제품 외에는 모두 -_- 수준의 공산품 뿐이었습니다. 선물로 사들고온 몽골산 초컬릿은 제가 하나 먹어봤더니 인간이 먹어서는 안될 것으로 판단되더군요.
6. 세계에『몽골』이 없었다면... 징기스칸 및 원나라...도 없었을테고, 그러면 역사의 흐름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하긴 중국 내 역사 판도만 영향을 받았을지도요. 어차피 주변국들은 큰 집 주인만 수차례 바뀐 셈이니.
7. 바톤을 받는 5명(지정과 함께) 으흣 역시나 변방 블로그에선 머리를 짜내야하는 바톤. 강압이 아니오니 하시고픈 분들만 부탁드려요. ^^
글루미 새러데이. 사람 마음이란 게 간사하기 이를데 없기에 매번 시험 망치고 수업 때 모르는 소리 가득인 것 느끼게 되는 수업 당시엔 의욕 200% 로 '앞으로는 이렇게 저렇게 초울트라 열심모드로 복습하고 예습하고 문제풀고...' 삘의 계획을 연습장에 가득가득 적어나가다가, 새벽나절 집을 나섰는데 학원문 나오면 어느새 어둠이 깔린 토요일 밤거리인 고3보다 조금 더 나은 상황 속에 휘적휘적 독서실로 돌아와 계획대로 실행한다는 건 웬만한 심지의 의지가 아니고서는 힘들 뿐더러 육체적으로 견뎌내지도 못한다. 일월화수목금 까지 밤낮 뒤바뀐 생활하다가 토요일 하루만 정상인 흉내를 내는 것이니 수업 직전 토탈 수면시간은 4시간 미만. 더구나 어제는 미친 마음에 자기 전에 PSP로 괴혼을 하느라.....하하하!! 업뎃을 못해서 맺혔던 한을 푸느라 에너지가 소진되었다. 게임할 때 콘트롤러 등을 매우 쎄게 부여잡고 혼연일체가 되어 온몸으로 즐기는 특성상 손가락 관절 등에 이상이 안생길래야 안생길 수가 없는데, 안그래도 하루종일 펜대잡고 앉아서 글쓰느라 지칠대로 지친 오른손이 맛이 갔다. 공부와 놀이는 정녕 병행이 불가능한 것인가. 그러고보니 PSP의 나쁜점 한가지는 몸과 함께 손에 잡고 있는 작디작은 게임기 자체가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으니 가끔 심하게 옆으로 몸을 뉘인다던지하면 화면이 잘 안보인다는 거다. PS2는 TV가 제자리에 있으니 이따위로 플레이해도 할만한데;; 이러저러하여 독서실 와서 책상에 앉고 15분 경과 후 곯아떨어졌다가 1시간을 자고 일어났더니 개운하다. 이래서 다시금 야행성 패턴을 되찾는거지. 발전은 없고 그저 피곤한 토요일이 반복될 뿐이다. 금요일도 그전까지 놀다가 몰아쳐서 예습하느라 피곤하긴 매한가지지만. 벼락치기 인생의 벼락은 그칠 날이 없노라.
어제 괴혼할 때 초반 미션 중에 6분 내에 1m 50cm 짜리 덩어리를 만드는 게 있었더랬다. 이거 깨는데 쪽팔리게도 6판이나 했다. 게임 좋아하는 거랑 잘하는 거랑은 틀리니까 뭐. 그래도 다음 번 것들은 꽤 잘한 것도 있어서 아바마마한테 칭찬도 듣고 동물들도 좋아했다고;; 왠지 변명같잖아-_- PSP판은 별이 아니라 동물들이 '딱딱한', '럭셔리한', '말랑말랑한', '밝은' 등등의 섬을 만들어 달라고 왕자에게 요청하는 건데 미션 크기만큼 딱 만들면 패스는 되지만 원하는 형용사적 표현에 영 못미치는 섬이 되어버리고 만다. 안딱딱하다는 둥, 가난뱅이 섬같다는 둥, 아바마마 실망은 당연하고, 의뢰한 동물들도 왕싸가지 대사를 찍찍해댄다. 무조건 큰게 아름다운(응?) 그런 동네인거다. 1m 50cm 덩어리 의뢰자는 카나리아 였는데, 자기네는 밝아야 노래도 좀 하고 살만하다고 밝은 섬을 만들어달랬다. 6판째에나 겨우 깼던 만큼 통과 크기도 1m 53cm 정도였나? 간당간당하게 통과했더니 별로 안밝은 섬이네 실망이네 말들이 많다. 섬이름도 무려 '촛불-_-섬'. 젠장. 다른 판 좀 깨다가 만들어둔 섬들 구경이나 해볼까 싶어서 기구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중간에 쬐그만 섬이 보인다. 가까이 갔더니 그 촛불섬.....카나리아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요 왕자님이신가요? 여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아요' 이지랄. 섬 모양새도 보니 깜박거리는 어두운 전구 하나가 섬을 뱅글뱅글 돌고 있고 여기저기 촛불이 켜져있다. 게임 잘하는 이는 접하지 못했을 설정이었을거라 위안하며 잠들었다. 예전 생각이 나더라. 대항해시대 온라인 서비스 시작무렵에 권유받고 시도했는데, 배타고 나가자마자 길을 잃더니 곧 '쥐가 생겼습니다' '전염병이 돕니다' 이러더니 선원수가 하나둘 줄기 시작한다. 다음날 권유한 동생에게 '이럴땐 어째야 해?' 물었더니 '그런 경우 겪어본 적도 없고 첨 들어보는데요. 어떻게 해야 그지경까지 되요?' 아놔..
모 블로그에 갔다가 '진산'이라는 무협소설 작가분 블로그를 알게 되었는데, 이 분이 WOW 하며 쓰신 글이 정말 장난아니다. 이런 온라인 게임류에 몸담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고작 게임일 뿐인데 뭘 그리 연연하나 라는 반응을 보이기 쉬우나 이 분 글을 읽으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오늘 하루는 여기에 홀딱 빠져 울고 웃느라 공부는 조금밖에....(이거 아니라도 늘 공부는 조금밖에 못하고 있긴하다;;) 장장 45편에 이르는 '공격대 이야기' 감상하려면 클릭.
WOW는 무료시절 아주 잠시 - 거의 찰나에 해당한다 - 캐릭 만들고 퀘스트 서너개 해보다가 이쁘장한 마비노기와는 너무 다른 UI에 이질감을 느끼고 전투 역시 몹 잡을 때마다 매번 소규모 격투를 해야했던 마비와 달리 그저 단순 어택 명령만 연달아 내리면 되는 것이 참으로 심심하게 여겨져서 일찌감치 접었었다. 하지만 WOW 안해봤어도 진산마님의 훌륭한 글솜씨는 내가 마치 그 전장에 있는 듯 전율을 느낄 수 있게 해주시니 이것이 진정한 작가!
일전에 회사다닐 때 동료가 보내주었던(작가는 마음에 안들지만 이 글만큼은 재밌었다며) 이인화씨의 신동아 기고글, "리니지 폐인, 영웅들은 현실로 귀환하라" 를 읽었을 때에도 인간의 역사는 게임의 세계에서마저 반복되는구나 했더랬다.
마비노기 초보시절 카운터 쓰는 몹에 대한 대응력을 갖춘 지 얼마 되지 않아 검은 늑대를 때려잡으며 휴즈 터져라~ 하고 있는데, 옆에서 알짱거리는 회색 여우가 보기 싫어서 한방에 없앴더니 그놈한테서 휴즈 럭키 피니쉬....아니 왜 이놈한테서 휴즈가 터지는거야 울부짖자 파티원 한분께서 "그것이 인생이죠". 각자가 각자의 게임을 통해 인생을 배워나간다. (검늑은 쎈 몹이라(여우보다는) 휴즈 럭키 피니쉬 터지면 여우 휴즈에 비해 몇배의 돈더미 +_+)
[도깨비 뉴스]
요즘 젊은 층들 가운데서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게임은 대다수 젊은이들 사이에 생활의 일부이자 문화가 됐습니다만 아직도 밤늦게까지 게임에 몰두하는 자녀를 보고 흐뭇해 하는 부모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 중·장년층은 게임을 좋게 보면 단순한 오락, 나쁘게 말하면 시간낭비로 생각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소설가인 이화여대 교수 이인화씨가 게임하는 사람과 게임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의 이같은 간극을 메워 줄 만한 장문의 글을 시사 월간지 신동아 8월호에 기고 했습니다.
그는 “가상현실에서도 정의가 승리 해야…그래서 ‘바츠 해방전쟁’ 일으켰다”는 제목의 이 글에서 한국의 온라인 게임을 전세계적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핵심 콘텐츠로 규정하고 "게임이라는 장르를 넘어 이제까지 인류사에 존재한 어떤 이야기 예술과도 다른, 전혀 새로운 서사 패러다임의 이야기를 출현시킨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는 ‘리니지2’ 제1서버(바츠 서버)에서 2004년 6월에 발발한 ‘바츠 해방전쟁’을 세밀하게 분석한 뒤 "이 스토리를 체험한 상당수 ‘리니지2’ 사용자야말로 귀환하지 않는 영웅"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을 ‘폐인’이라고 조롱하지만 그들은 이를 웃어 넘기며 온라인 게임이 만든 매트릭스로 날마다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인화 작가는 "이 귀환하지 않는 영웅들이 어떻게 현실로 돌아와 세계를 복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가상현실과 현실의 융합이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른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깊이 고려해야 할 과제"라고 결론을 맺습니다.
도깨비 뉴스에 소개하기에는 너무나 긴 글이지만 주말을 맞아 さ湧?nbsp;계획이 없는 독자라면 한번쯤 정독을 해볼 가치가 있는 글이라고 판단돼 전문을 소개합니다
“가상현실에서도 정의가 승리 해야…그래서 ‘바츠 해방전쟁’ 일으켰다”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은 인공적으로 구현된 게임 속 가상 현실세계에 수천명의 사용자가 동시에 접속해 마치 배우들처럼 각자의 역할을 맡아 움직이는 게임이다. 이러한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중 전세계에서 주목하는 것이 바로 ‘리니지2’다. 화제가 됐던 ‘리니지2’의 ‘바츠 해방전쟁’ 분석을 통해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핵심 콘텐츠로 각광받는 온라인 게임의 문명사적 의미를 짚어본다.
디지털스토리텔링(Digital Storytelling)은 네트워크화된 컴퓨터 환경에서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해 이루어지는 스토리텔링이다. 산업현장에서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디지털 콘텐츠의 시나리오를 만드는 창작 기술로 이해되고 있다. 컴퓨터 게임, 애니메이션, 디지털 영화, 웹 광고, 사이버 커뮤니티, 웹 에듀테인먼트, 웹 뮤지엄 등이 현재 디지털 스토리텔링이 활발하게 적용되는 콘텐츠다.
최근 연구자들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국제 표준을 한국에서 개발된 온라인 (컴퓨터) 게임에서 추출하려 시도하고 있다. 온라인 게임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핵심 콘텐츠다. 온라인 게임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개념에 정확하게 일치하면서 동시에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대한 새로운 실험이 가장 활발하게 시도되는 분야다.
한국은 1990년대 후반 세계 최초로 온라인 게임의 상용화에 성공한 국가다. 이후 한국은 발달한 IT 인프라와 반도체, TFT, LCD, 모바일 분야 세계 1위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온라인 게임의 발전을 선도해 2004년 현재 세계 시장의 31.4%를 장악하고 있다. 한국의 온라인 게임은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북미까지 서비스돼 ‘IT 한류(韓流)’라는 현상을 만들어냈으며 현재 ‘오프라인 게임의 온라인화’라는 세계 게임산업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계량적인 성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콘텐츠의 질적인 면이다. 한국의 온라인 게임은 인류의 이야기 예술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게임학(ludology)의 세계적인 석학 에스펜 아세스는 ‘퍼스트 퍼슨(First person)’(2004)이란 저서에서 “한국의 다사용자 게임 ‘리니지’는 게임의 미래일 뿐만 아니라 미래의 인간 커뮤니케이션 형식을 만들어낼 거대한 사회적 실험”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온라인 게임은 게임이라는 장르를 넘어 이제까지 인류사에 존재한 어떤 이야기 예술과도 다른, 전혀 새로운 서사 패러다임의 이야기를 출현시켰다. 그것은 “1000시간 이상 지속되며 고조되는 갈등 상황에 스스로 주인공으로 참여함으로써 사회 정의와 인간적인 자유의 가치를 깨달아가는 사용자(독자)”라는 매우 특이한 이야기다.
온라인 게임에서 한국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에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본질이 드러난다. 프리드리히 셸러의 말처럼 인류 사회는 인간의 현실적인 필요성 때문에 구성됐지만 그 사회에 조화를 부여하는 것은 예술이 만드는,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인 취향이다. 미래의 인류는 바로 한국의 온라인 게임과 같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공동의 취향을 학습하고 사회 정의와 자유를 향한 연대감을 구축해 갈 것이다.
게임산업은 디지털 콘텐츠 시장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2003년 현재 전체 디지털 콘텐츠 시장의 25%를 차지한 상태다. 세계 게임 시장 규모는 2005년 현재 약 770억달러(81조원)로 추정된다.
12개국 206만명의 사용자
게임산업은 게임 콘텐츠가 구현되는 플랫폼(게임 구현 장비)에 따라 다섯 가지로 분류된다.
온라인 게임은 사용자가 인터넷 통신망을 통해 멀리 떨어져 있는 서버 컴퓨터에 접속해서 즐기는 게임이다. 수십만에서 수만명의 이용자가 동시에 접속해 게임을 진행한다.
이 같은 온라인 게임 진행 방식을 클라이언트/서버(Client/server) 시스템이라고 한다. 사용자는 비디오 게임처럼 CD나 DVD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 회사의 공식 홈페이지에 계정을 등록하고 게임 프로그램, 즉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한다. 다운로드한 프로그램을 자신의 컴퓨터에 설치한 뒤 인터넷으로 게임 회사의 서버에 접속해 게임을 한다. 사용자는 대개 자신이 접속한 시간에 따라 일정액을 지불한다(‘리니지2’의 경우 1개월에 2만9500원).
이러한 클라이언트/서버 시스템은 규모성(salability)과 지연성(tardiness)의 두 가지 면에서 제한된다. 규모성이란 사용자 수가 증가할수록 게임이 처리해야 할 정보 규모가 커지는 것을 뜻하며, 지연성이란 사용자 수가 증가할수록 게임의 응답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수천 내지 수십만명이 접속하는 온라인 게임은 여러 개의 서버에 정보를 분산해 운영한다.
세계 최초로 온라인 게임 상용화에 성공한 한국은 이와 같은 분산 서버의 네트워크 기술과 게임 운영 관리(GM) 기술, PC방, 초고속통신망(ADSL), 모바일 빌딩의 ‘과금(課金) 시스템’ 등 보완적 인프라에서 세계적인 비교 우위를 가지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 게임시장의 발전을 이끈 것은 온라인 게임 플랫폼에 롤플레잉 게임 장르가 결합된 형태였다. 사람들은 이것을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 즉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이라고 말한다.
‘리니지’ ‘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라그나로크’ ‘RF온라인’ ‘구룡쟁패’ ‘메이플스토리’ ‘디아블로2’ ‘길드워’ ‘마비노기’ ‘조이 시티’ ‘레드 문’ 등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서 일반인이 흔히 온라인 게임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MMORPG다. MMORPG는 현재도 9세부터 29세에 이르는 연령대의 게임 사용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게임 장르다.
MMORPG는 수천명 이상의 사용자가 동시에 인공적으로 구현된 게임 속 가상 현실세계에 접속해 마치 역할극의 배우처럼 각자의 역할을 맡아 움직이는 게임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용자의 캐릭터는 여러 가지 사건을 겪은 경험의 수치(경험치)에 따라 점점 더 높은 레벨로 성장한다. 캐릭터의 성장은 그가 입는 옷과 사용하는 무기, 습득하는 스킬 등을 통해 가시적으로 표현된다.
이 같은 MMORPG 가운데 한국형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모델로 주목되는 게임은 ‘리니지2’다. 엔씨소프트사(社)의 ‘리니지2’는 ‘리니지’의 후속편으로 제작된 세계 최초의 풀 3D 온라인 게임으로 2005년 현재 대규모 다중접속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분야를 대표하는 세계 최고의 게임이다.
2005년 3월22일 현재 ‘리니지2’는 북미, 유럽, 중국, 일본, 한국 등 세계 12개국에 206만명의 사용자와 12만명의 동시 접속자를 가지고 있다. ‘리니지’와 ‘리니지2’를 합치면 사용자가 400만명, 누적 회원 수가 1950만명이다. 이 숫자는 전세계 온라인 게임 사용자의 50.9%를 차지한다.
경험 수치에 따라 점점 높은 레벨로
처음 ‘리니지 2’의 가상현실에 접속한 사용자는 캐릭터 리스트에 아무것도 없는 가상공간과 만나게 된다. 셀렉션 스크린(selection screen)이라고 부르는 그곳에서 사용자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디자인한다. 이러한 선택에는 종족, 성별, 외모뿐만 아니라 헤어스타일, 키, 피부색깔 등 다양한 디테일이 포함된다.
이러한 조형 과정을 통해 사용자는 캐릭터와 감정적으로 매우 유착한다. 현실 공간에서 나의 외모와 이름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나의 성장 또한 상당 부분 부모와 사회적 조건에 빚지고 있다. 그러나 가상공간에서 만든 나의 캐릭터는 그 외모와 이름, 그리고 성장 과정까지 어느 하나도 나의 노력이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마침내 레벨 1의 캐릭터로 태어난 사용자는 종족에 따라 각기 다른 장소에서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마을과 마을을 이동하며 게임 안에 등장하는 NPC들(Non-Player Character·프로그램에 의해 만들어진 캐릭터)을 클릭하면 여러 가지 수행 과제인 퀘스트를 얻을 수 있다. 퀘스트를 수행하면 경험치와 돈을 보상으로 받는다. 다른 플레이어와 협동해 사냥하면서도 경험치를 쌓을 수 있다. 일정 경험치를 쌓으면 레벨이 높아져, 캐릭터의 능력이 향상되고 더욱 수준 높은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더욱 전문적인 직업을 선택할 수 있고, 플레이어 집단인 혈맹을 창설해 군주가 될 수도 있다.
혈맹은 군주와 일반 혈맹원으로 구성되는데, 군주의 SP(스킬 포인트)와 아이템, 돈을 지불해 레벨을 올린다. 혈맹의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 혈맹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혈맹이 거느릴 수 있는 최대 인원도 늘어나며 혈맹간 전쟁도 벌이게 된다. 전쟁을 통해 혈맹은 그 세력을 넓힐 수 있으며, 4레벨 이상의 혈맹은 성(城)을 차지할 수도 있다. 성을 차지하기 위한 혈맹들의 전쟁이 바로 공성전이다.
민중 계층의 봉기
‘리니지2’ 세계에서 일어난 여러 스토리 가운데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제1서버(바츠 서버)에서 2004년 6월에 발발한 ‘바츠 해방전쟁’이다. ‘리니지2’에는 32개의 서버가 있다. 이 가운데 바츠 서버는 역사가 가장 오랜 서버로, 사용자들이 개발사에 대해 항의 시위를 하는, 정치적 대표성을 가진 서버다. 바츠 해방전쟁은 ‘리니지2’에서 발생한 숱한 스토리 가운데 현실세계의 일간지에 보도될 만큼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다.
바츠 해방전쟁은 ‘리니지2’의 세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다. ‘리니지2’의 세계는 레벨에 따른 계층적 차별성이 뚜렷하게 제시되는, 철저한 계층 사회다. 레벨에 따라 입는 옷과 쓰는 무기 등 아이템이 다르며 출입할 수 있는 지역도 다르다.
‘리니지2’의 스토리 세계에는 현실 역사의 ‘민중’에 비유될 만한 계층이 존재한다. 통계 자료를 보면 40레벨 이하의 캐릭터들로 규정되는 이 민중 계층은 2003년 11월25일 현재 전체 ‘리니지2’ 플레이어의 85.9%를 차지한다. 한편 65레벨에서 75레벨 사이의 캐릭터이면서 지배혈맹에 소속된, 현실 역사의 ‘군사 귀족 계층’에 비유될 계층 역시 뚜렷이 존재한다.
레벨이 높아져 세력을 형성한 혈맹에 들어가면 멋진 무기에 좋은 옷을 입고, 아름다운 성에서 살며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낮은 레벨의 군소 혈맹원은 수시로 공격당해 죽고 들판과 음습한 동굴, 무너진 산채에서 혈맹 모임을 연다. 사냥터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기 때문에 레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도 적다.
이러한 계층 분화는 레벨 차이에 따른 이해관계의 상충현상을 일으켜 혈맹 전쟁의 확산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전쟁혈맹의 혈맹원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 55레벨 정도가 돼야 하며 DK혈맹과 같은 이름 있는 혈맹에 가입하려면 최소 61레벨에서 65레벨이 돼야 한다. 따라서 혈맹전쟁은 그만큼 레벨이 높은 전쟁혈맹 사람들만의 관심사다.
이처럼 계급구도가 뚜렷한 ‘리니지2’ 세계에서 민중이 대대적으로 봉기한 2004년 6월의 바츠 해방전쟁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바츠 해방전쟁은 ‘리니지2’ 세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바츠 해방전쟁은 위협하면 굴복하고 때리면 죽는 민중이 권력을 전복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민중의 고조된 열광은 시스템상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승리를 만들어내었다.
이러한 승리는 크라토스(Kratos), 즉 거칠고 원초적인 물리력이 지배하던 세계에 에토스(Ethos), 즉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가치 이념을 출현시켰다. 이후의 ‘리니지2’ 세계에서는 어떤 권력도 이 같은 에토스의 전제 없이는 피지배계층의 복종 내지 권력에 대한 묵인을 얻어낼 수 없다는 진리가 확인됐다.
지배혈맹의 압제와 세금인상
이러한 바츠 해방전쟁의 발발에는 두 가지 경제·정치적 요인이 작용했다.
첫째 요인은 10%에서 15%로 바뀐 2004년 2월16일의 세율 인상이었다. 세율이란 성을 차지한 지배혈맹과 개발회사가 상점에서 거래되는 모든 물품대금의 일정 비율을 나누어 갖는 것을 말한다. 높은 레벨의 사용자는 자신에게 필요한 물품을 다른 사용자와 직거래하므로 세율인상에 구애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상점에서 무기와 옷, 마법방어를 위한 장신구, 각종 물약과 마법서를 사야 하는 40레벨 이하 사용자에게 세율 인상은 생계를 위협하는 변화였고, 이러한 불만은 세금을 징수하는 지배혈맹에 대한 분노로 이어져 해방전쟁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대를 만들었다.
둘째 요인은 극에 달한 정치적 압제였다. 바츠 서버에는 1000개가 넘는 혈맹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쟁혈’이라는 전쟁혈맹과 ‘친목혈’이라는 사교혈맹의 경계는 매우 유동적이다. 쟁혈 내부에도 사교 활동이 있고 친목혈도 다른 혈맹에 전쟁을 선포하면 전쟁혈이 되기 때문이다. 둘 가운데 ‘리니지2’ 세계의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전쟁혈이다.
전쟁혈은 다른 혈맹보다 더 레벨이 높고, 더 오랜 시간 활발히 접속하며, 더 PvP 전투(플레이어간 대인전)에 능한 혈맹원을 영입하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이러한 세력 경쟁에서 승리한 혈맹이 지배혈맹이 된다. 때로 최강의 조직을 구축한 거대 지배혈맹의 군주는 다른 유력 혈맹과 단합해 공포와 전율로 얼룩진 철권통치를 구현할 수도 있다. 바츠 서버에 나타난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지배혈맹의 철권통치였다.
2003년 7월6일 오픈 베타 테스트가 시작된 직후부터 바츠 서버를 지배해온 것은 드래곤 나이츠(Dragon Knights·일명 DK) 혈맹이었다. 이미 ‘리니지1’에서부터 활동해 조직을 정비한 상태에서 ‘리니지2’로 넘어온 DK혈맹은 가장 먼저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혈맹원을 규합한다. 그 뒤 DK혈맹은 ‘리니지2’의 신화적 고대 세계에서 집단으로 구현되는 인간 의지의 강렬함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사냥터 통제로 이윤 독점
이들은 ‘통제령’을 통해 좋은 아이템과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사냥터를 봉쇄해 다른 사용자의 출입을 막았다. 나아가 ‘척살령’을 발동해 피의 독재를 전개하면서 자신이 독점한 사냥터에서 ‘오토’라고 부르는 자동 매크로 프로그램 사냥을 통해 24시간 아덴(리니지 세계의 통화)을 벌어들였다. 또 그때그때 유력한 다른 혈맹과 적절히 제휴함으로써 대항 혈맹들의 도전을 성공적으로 분쇄했다.
게임 사냥터 통제는 ‘리니지1’에서부터 시작된 현상이다. ‘리니지1’에서 사냥터 통제를 통한 이윤 독점을 학습한 DK혈맹은 일찍부터 ‘통제’와 ‘오토’를 은밀히 행해왔다. 그러나 2004년 3월 거대 3혈맹 단결식을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확인한 DK혈맹은 아예 ‘통제’와 ‘오토’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여기에 반항하는 사용자들을 살해하는 ‘척살’을 확대했다.
이와 같은 권력의 횡포, 아무런 가치 이념도 전제되지 않은 일방적인 물리력의 발현은 일반 민중에게 인내심의 한계를 경험하게 했다. 이것이 세금 인상에 따른 민중계층의 광범위한 불만과 결합하면서 마침내 바츠 해방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바츠 해방전쟁의 서전(序戰)은 2004년 5월9일 붉은혁명혈맹이 DK혈맹 군대가 방어하는 기란성을 점령하고 “세율 0%”를 선언한 것. 이 기적 같은 승리는 사냥터라는 생존의 터전을 봉쇄당하고 척살의 공포에 떨던 피지배계층 민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리하여 단독으로 DK혈맹에 전쟁을 선포했다가 무참하게 진압당한 바 있던 더킹혈맹, 순수한 마법사들만의 혈맹인 해리포터혈맹, 수원성혈맹, 하드락혈맹, 리벤지혈맹 등 지배혈맹은 아니지만 상당한 세력과 힘을 가지고 있는 혈맹들이 하나로 뭉쳤다. 이들이 ‘바츠동맹군’을 결성하고 ‘반3혈(反三血)’의 기치를 높이 들자 민중은 하나 둘 그 옆에 모여들어 자발적으로 이들의 방패막이가 되었다.
전투력이 낮은 저레벨 사용자들은 DK혈맹을 중심으로 한 3혈 연합군의 ‘화살받이’가 돼 무수히 죽어갔다. 민중 계층이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방안은 인해전술이다. 버프(공격 및 방어 능력의 일시적 증강)와 스킬의 화려한 효과음과 함께 일방적으로 상대를 도륙하는 DK혈맹 전사의 모습과 수십명이 낙엽처럼 죽어가는 일반 사용자의 모습은 고대적 파토스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자유의 깃발 아래 죽다
이러한 상황은 사람들의 정의감을 자극했다. 반3혈측의 절박한 호소문이 인터넷에 오르자 비슷한 폭압에 시달리던 다른 서버의 사용자들이 자신들의 캐릭터를 버리고 ‘정의와 자유’를 외치며 바츠 서버로 밀려들어왔던 것이다. 이들은 바츠 서버에서 새로 캐릭터를 만들어야 했기에 이들의 캐릭터는 형편없는 저레벨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저레벨 캐릭터로 내복만 겨우 걸치고 값싼 뼈단검 하나만을 장비한 이들을 프랑스혁명의 상퀼로드(긴바지를 입은 빈민층) 집단에 비유해 ‘내복단’ 혹은 ‘뼈단’이라 불렀다.
다른 서버 사용자들이 참전해 바츠 서버가 만성적인 접속 장애에 시달리던 이 시기에 많은 호소문이 나타났다.
바츠 서버의 이 전쟁은 일반 유저들의 힘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바츠 동맹이 패배할 것입니다. 단 1렙짜리 캐릭이라도 수십명이 모여서 DK연합에 공격을 가하면 물리적으로는 물론 심리적으로도 큰 타격을 줄 것입니다. (중략) 이번 전쟁은 바츠 서버만이 아닌, 전 서버가 그 결과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거대 혈에 억눌려 있는 많은 저주서버 유저가 함께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자신감을 주어야 합니다. 다시는 어떤 서버에서도 이러한 독재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전 지금 이 순간 바로 바츠 서버에 캐릭을 만들어 내복단에 합류할 것입니다. 제 가슴속에 끓어오른 피를 주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겁니다. 그 거대했던 바츠 서버 해방전쟁에 내복단의 일원으로서 그 자리에 있었노라고.
- 겸댕이대왕, <호소문 - 전 서버 유저들이여 궐기하라> (2004. 6.16.)
내복단의 주류는 하루 이틀 정도 육성한 레벨10 전후의 캐릭터다. 뼈단검을 든 이들의 공격력은 5~10포인트(한번 공격할 때 상대가 입는 대미지)다. 이들이 상대하는 DK혈맹원은 65레벨에서 75레벨 사이의 고수로 이들의 공격력은 한번 시전시 1000~1300포인트에 이른다. 공격 시전 속도를 감안할 때 이는 어떤 전술로도 상대가 될 수 없는 차이다.
그러나 온라인 게임에서 네트워크화된 컴퓨터 환경은 고립된 개인의 상상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뛰어넘는 집합 지능(collective Intelligence)을 출현시킨다. 이것은 마치 개미 한 마리 한 마리는 낮은 차원의 지능을 갖지만 더듬이를 병렬로 연결한 그 집단의 지능은 인간보다도 더 뛰어난 최적의 행위와 최적의 해답을 찾아내는 이치와 같다.
내복단 구성원이 찾아낸 최적의 전술은 DK혈맹 전투부대의 측후방으로 돌아가 가장 취약한 힐러(치유술사)를 ‘모탈 블로’라는 스킬로 100여 명이 동시에 찌르는 방법이었다. 내복단 한 사람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적의 힐러에게 대략 40의 대미지를 입힐 수 있었다. 100명의 화력은 40×100=4000 포인트에 이르며 한꺼번에 4000포인트의 체력이 감소한 힐러는 손쓸 겨를도 없이 전사한다. 이렇게 힐러가 전사하면 버프와 힐(대미지를 입은 체력의 회복)을 받지 못한 DK 전투부대는 중심을 잃고 그 뒤에 달려드는 내복단에 의해 각개격파돼 죽어갔다.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리니지2’의 채팅창은 띄어쓰기를 포함해 24자를 치면 꽉 찬다. 또 현실적으로 동일한 작전 행동을 할 수 있는 단위는 9명에 불과하다. 내복단은 이런 제한된 의사소통 환경에서 제한된 수단을 이용해 수백명, 수천명에게 작전 명령을 내리고 반응하면서 현실의 전투 군단처럼 신속하게 기동했다. 그러면서 적에 대한 기만, 공포감 조성, 일사불란한 이동과 과감한 종심돌격, 때로는 독창적인 전술행동을 실현했다. 이러한 기동전의 놀라운 방식은 네트워크화된 컴퓨터 환경의 집단 지능이 얼마나 가공할 힘을 발휘하는가를 보여준 실례다.
이러한 집단 지능은 단순히 전투에 그치지 않았다. 피에르 레비(Pierre Levy)의 지적처럼 집단 지능은 개체적 차원의 상황을 연계해 더욱 고귀하고 상승적인 가치를 생산한다. 이 시기 ‘리니지2’ 사용자의 가슴에 발생한 의분과 정열, 정의를 향한 열망은 단순한 놀이로서의 게임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물론 게임의 데이터베이스 위를 이동하는 사용자의 움직임은 가상적이며 그가 꿈꾸는 혁명은 다운로드한 프로그램 속의 상상이다. 그러나 현실 공간의 체험이 사용자의 인생이듯 가상공간의 체험도 사용자의 인생이다. 비록 현실에서의 움직임이 아니지만 그 처절하고 절박한 감정적 경험은 사용자가 만나는 일생일대의 체험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럽니다. 이건 게임일 뿐이라고. 현실과 착각하지 말라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유저들이 이렇게까지 그러는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하신다면 딱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온라인 게임은 가상현실의 세계입니다. 자신의 캐릭에 애정을 가지고,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게임이란 걸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게임이지만 게임도 하나의 가상현실이고 그곳에도 정의가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매트릭스 영화와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매트릭스는 네오라는 영웅에 열광하는 것이지만 리니지2는 자신의 캐릭이 리니지2라는 공간에 존재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문제인 것입니다.
과거 저는 ‘리니지1’에서 아주 작은 혈의 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사소한 문제로 당시 거대 혈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너무 억울했지만 저는 아무 말 없이 그 쪽 군주에게 정식 혈전을 요청했습니다. 질 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학살당할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번 싸워보자는 혈원들의 패기와 용기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비굴해지기 싫었습니다. 전 묵묵히, 제 장비를 긴급처분해 혈원들에게 물약을 지급했습니다. 그리고 전쟁터에 가보았지요. 일방적인 학살이었습니다. 하지만 혈원들은 단 한 명도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싸웠습니다. 오히려 저를 위로하더군요.
전 아직도 그때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립습니다. 정의를 위해 질 걸 알면서도 당당하게 싸우다 죽어간 혈원들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행동에 대해 단 한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 바츠 해방전쟁에서도 그렇게 자랑스럽게 싸울 것입니다. 비록 저 자신 한 명은 큰 힘이 되지 못할지라도 작은 힘이 모이면 어떠한 것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겠습니다.
(2004. 6.17. ‘리니지2’ 게임포 게시판 호소문의 세 번째 댓글)
내복단의 활약
이처럼 내복단은 ‘리니지2’라는 가상현실을 현실의 시공간적인 제약을 넘어 ‘정의와 자유, 그리고 동지애’라는 고귀한 가치에 연대하는, 현실보다 더 숭고하고 더 인간적인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바츠 해방전쟁에서 내복단이 만들어낸 에토스, 윤리적 가치 이념은 온라인 게임과 같은 현실의 가상현실화가 더 높은 단계의 인간화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가상(Virtuality)은 단순히 ‘실물처럼 보이는 거짓 형상’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적인 가치들을 눈앞에 구체적으로 현시한 것이다.
2004년 6월의 대접전 기간에 DK혈맹은 어떤 여론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항전했다. 내복단은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바츠 서버로 밀려들었으며 5개 성을 중심으로 주요 전쟁터는 양측의 시체로 뒤덮였다.
7월에 접어들자 바츠동맹군(혁명군)의 전열은 더욱 강고해졌다. 붉은혁명 혈맹과 리벤지혈맹을 중심으로 32개 전쟁 혈맹이 ‘바츠 해방’의 깃발 아래 집결했고, 무수한 내복단이 이들의 외곽을 수호했다. DK연합군은 야전에서 패퇴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강철 같은 DK연합군 5개 아성 가운데 최초로 오랜성이 함락됐다. 이 과정에서 전 서버 최강의 전사인 DK연합군의 아키러스가 순수한 저레벨의 내복단과 싸우다 전사하기도 했다.
급기야 6월28일 3혈 동맹의 주축이자 DK혈맹 다음의 거대 혈맹이던 제네시스혈맹이 사냥터에서 벌어진 사소한 충돌을 빌미로 DK혈맹과 결별하고 바츠 혁명군에 투항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당황한 DK혈맹은 급히 정(情) 혈맹과 위너스혈맹을 회유해 4혈 동맹을 결성했지만 지배연합의 전열은 크게 흔들린 뒤였다.
그리하여 7월17일 바츠 해방전쟁의 분수령이 된 아덴 공성전이 벌어졌다. 이 시기 바츠동맹군은 40개 혈맹에 이르렀으며 오랜성을 점령한 상태였다. 리니지 월드의 중북부에 자리잡은 오랜성은 비록 궁벽한 산악지대에 위치해 있지만 60레벨의 엘프족 전사가 윈드 서커의 버프를 받고 달리면 10분 안에 사냥꾼 마을을 거쳐 수도 아덴성을 공략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당시 바츠동맹군은 7인의 지휘관이 이끄는 엉성한 집단지도체제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 지휘관들은 오랜성 성주이자 리벤지 혈맹의 총군주 ‘나리타’, 붉은혁명혈맹의 총군주 ‘눈물을 감추고’, 해리포터 혈맹의 총군주 ‘박셩만만쉐’, 더킹혈맹의 총군주 ‘혜원낭자’, 수원성혈맹의 총군주 ‘칼데스마’, 하드락혈맹의 총군주 ‘엘븐백기사’, 그리고 가장 나중에 합류해 바츠동맹군 사이에 묘한 긴장을 감돌게 한 제네시스혈맹의 총군주 ‘칼리츠버그’다.
혁명이 태양처럼 빛나던 날
이토록 많은 혈맹이 집결했지만 바츠동맹군은 아직도 수적으로 DK연합군에 비해 열세였다. 이러한 역학관계는 바츠 서버의 독특한 정치적 정세에서 비롯된다. 바츠 해방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현실적으로 DK연합에 가입하거나 양해를 얻지 않고서는 자신의 캐릭터를 52레벨 이상 육성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52 이상의 레벨 업을 위해 꼭 들어가야 하는 사냥터를 DK연합이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으로 파편화된 사용자들은 물질적 안락과 사회정의 사이에서 흔히 현실과의 타협을 선택했다. 그 결과 전쟁을 할 수 있는 대부분의 고레벨 사용자들은 이 시기까지도 DK연합에 속해 있었다.
이렇듯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DK연합군 전사들은 DK혈맹의 총군주이자 지배4혈의 총군인 ‘shadow여솔’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shadow여솔’ 밑에는 혈맹전쟁 참전 경험이 풍부한 백전노장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신의 기사단혈맹의 총군주 ‘지존군주’, 위너스혈맹의 총군주 ‘푸른 전사’, 정혈맹의 총군주 ‘만월의 폭군’이 그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츠동맹군이 대승을 거둔 아덴 공성전은 기만전술의 승리였다. 그토록 많은 내복단이 참전했음에도 바츠동맹군은 전투가 시작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실제 전력에서 DK연합군보다 우위에 있지 못했다. 불리하지만 회피할 수 없는 이 전투에서 바츠동맹군 수뇌부는 기만전술을 선택했다.
기만전술이란 위장과 은폐의 기획 의도를 가진 군사행동이다. 전쟁에서 일정 기간 적을 속이기 위해 대병력을 양동작전에 투입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작전은 없다. 일찍이 클라우제비츠는 “기만전술이 계획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지적하면서 “지휘관은 책략을 동원하기보다 쌍방 전투력의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오로지 필연성만을 고려하는 ‘엄숙한 열의’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수적 열세를 기만전술로 극복
이런 관점에서 바츠동맹군의 승리는 기적이었다. 수많은 내복단 가운데 첩자가 있어서 채팅창의 귓속말에 단 한 줄만 입력했다면 발각될 수 있었을 기만전술이 두 번이나 성공했다. 서로 얼굴조차 본 적이 없는 사이버 공간에서 내복단 동지들은 현실 공간에서보다 더 철저한 도덕성을 보여주었다.
바츠동맹군의 기만전술은 공성 등록부터 시작됐다. ‘리니지2’의 게임 규칙에 따르면 양군은 공성 시작 24시간 전에 공격할 성으로 가서 수성 등록과 공성전 등록을 해야 한다. 등록 마감 10분 전. 제네시스혈맹을 제외한 바츠동맹의 모든 혈맹은 오랜성에 수성 등록을 했으며 제네시스혈맹만이 아덴성에 공성 등록 절차를 밟고 있었다. 바츠동맹군은 누가 봐도 DK연합군의 탈환전에 대비해 오랜성 방어에 전념한 것처럼 보였다.
등록 마감 8분 전. 제네시스혈맹마저 공성 등록을 취소하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이에 DK연합군은 아덴성 수성 등록을 취소하고 오랜성으로 이동하는 한편 바츠동맹군의 위치를 맹렬하게 찾았다. 이 시간 사라진 제네시스혈맹과 바츠동맹군 본대는 사냥꾼 마을 근처에 매복하고 있다가 DK연합군의 이동 정보를 받자 즉시 아덴성 마을로 달려갔다.
등록 마감 3분 전 바츠동맹군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던 DK연합군은 할 수 없이 오랜성에 공성 신청을 했다. 같은 시간 바츠동맹군은 아덴 공성에 26개 혈맹이 신청하는 데 성공한다. 이때 아덴성에 수성 등록한 것은 DK의 1개 라인혈맹에 불과했다. 양동작전의 기만전술로 바츠동맹군은 공성에 참여할 수 있는 병력면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7월17일 오후 비교적 공성이 쉬울 것이라던 바츠동맹군의 예상은 빗나갔다. DK연합군은 오후 7시부터 아덴성 주위에 끝없이 밀려들었다. 그들은 엄청난 숫자로 대오를 정비하고 전략적 요충지마다 바츠동맹군의 진격을 봉쇄하기 위한 요격진지를 구축했다.
숙련된 DK연합군은 성 입구 중간에 칼과 단검, 창을 든 격수 부대를 배치하고 양 옆으로 넓게 궁수 부대를 포진시킨 학익진(鶴翼陣)을 구축했다. 이것은 성문으로 돌진하는 바츠동맹군을 일점사(一點射)로 저지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진법이었다.
8시. 결전이 시작되자 최전선에 DK연합군의 맹장 아키러스가 이끄는 ‘전 서버 최강의 전투 부대’ 아키러스 파티(9명)가 나타났다. 아키러스 파티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츠동맹군 3개 파티를 전멸시키고 바츠동맹군의 최전선 진지를 파괴했다. 전력의 우열이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났다. 오직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만이 바츠동맹군을 버티게 하고 있었다.
9시. 무수한 희생에도 바츠동맹군은 진지조차 세우지 못했다. 공성군측이 1시간이 지나도 진지를 세우지 못했다는 것은 치명적인 전황이다. 공성군측이 전사했을 때 진지가 있으면 그 진지에서 부활할 수 있지만 진지가 없으면 두 번째로 먼 마을에서 부활해 10여 분을 달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츠동맹군의 두 번째 기만전술이 시작됐다.
인간 바리케이드로 연합군 회군 저지
9시10분. 바츠동맹군은 부서진 진지를 뒤로하고 산지사방으로 패주하기 시작했다. DK연합군의 눈에 이와 같은 패주는 자연스럽게 보였다. 상대는 총사령관조차 정해지지 않은, 서로 얼굴도 잘 모르는 혈맹들의 엉성한 결합체였고 내복만 달랑 걸친 오합지졸의 군대였다. DK연합군의 맹공에 1시간 동안 버틴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9시20분. 승기를 잡은 DK연합군은 진군했다. 패주했지만 적의 주력이 완전히 분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합군 수뇌부는 결정적인 승리를 획득하기 위해 아덴성 주변의 전장을 떠나 오랜성으로 추격전을 결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대비해 CC지역의 레드군단 궁수부대와 DD지역의 화이트군단 궁수부대를 잔류시켰다.
그러나 이때 바츠동맹군은 패주한 것이 아니었다. 패주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만전술을 폈던 것이다. 바츠동맹군은 거의 흩어지지 않고 전장 외곽에 집결해 매복했다.
오랜성으로 진군한 DK연합의 대군은 리벤지혈맹을 비롯한 소부대만이 지키고 있는 오랜성을 맹공했다. 외성문 바깥쪽에 공성 진지를 구축하고 공성골렘(성문을 부수기 위한 공성무기)을 뽑아 눈 깜짝할 사이에 외성문을 부수어버렸다. 이 공세는 외성문 안쪽에 압살롬 진형(원형 일점사 진형)을 구축하고 있던 리벤지 혈맹으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리벤지혈맹은 총군주 ‘나리타’와 라인군주 ‘야적’ ‘어시장’ 등 지휘부가 직접 나서서 뚫린 외성문 안쪽에서 절망적인 심정으로 방어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DK연합군의 공격이 둔화되기 시작했다. 아덴성의 급전이 오랜성 공성부대로 날아든 것이다.
시간을 되돌려보면, 아덴성의 주전장에서는 DK연합군의 주전력이 이동하자 바츠동맹군이 즉각 다시 기동했다. 먼저 칼리츠버그의 진두지휘 아래 아수라처럼 분전한 제네시스혈맹이 DD지역의 화이트 군단 궁수부대를 격파했다. 제네시스혈맹은 한 라인을 보내 @지역에 진지를 구축하는 한편 나머지 병력으로 전장을 가로질러 CC지역 레드군단 궁수부대의 배후를 엄습했다. 레드군단 궁수부대는 앞뒤로 포위돼 전멸했다.
곧이어 바츠동맹군은 공성골렘을 소환했고 프로핏의 버프를 모두 받은 공성골렘은 불과 몇 분 만에 외성문을 파괴하고 내성문마저 부수어버렸다. 아덴성으로 쇄도한 바츠동맹군은 망루와 성벽을 지키던 위저드(공격수 마법사) 부대를 격파하고 내성으로 뛰어들었다. 내성을 지키던 DK 골드라인 혈맹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전원 사살됐다. 이 전투에서 지배4혈의 총군 shadow여솔도 전사했다.
이런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DK연합군은 다급한 나머지 오랜성에서 아덴성 마을로 텔레포트해 전장으로 직행하려 했다. 그러나 이들을 맞이한 것은 내복단의 결사적인 저항이었다. 인간 바리케이드를 형성한 내복단은 화살받이가 돼 죽으면서 자신들의 시체로 마을 입구를 겹겹이 막았다. 시체 때문에 걷기조차 어려워진 DK연합군은 바츠동맹군 궁수 부대와 위저드 부대의 집중 포화를 받고 쓰러져갔다. DK연합군이 전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사이 제네시스혈맹의 칼리츠버그 총군주가 각인실에서 성의 점령을 각인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 PC방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는 사용자들이 목격됐고 게임 안에서는 아덴성의 메인 홀에서 내복단들이 춤을 추었다. 이날은 ‘바츠 해방의 날’로 선언됐다. 이 날의 혁명은 모든 리니지 월드에 태양처럼 빛났다.
아덴 공성전은 바츠 해방전쟁의 분수령이었다. ‘리니지2’ 월드의 정치적 중심지인 아덴성을 점령한 것을 기점으로 바츠동맹군은 빠른 속도로 분열하며 타락해갔다.
분열의 씨앗은 전승(戰勝)의 과실을 누가 가질 것인가였다. 예컨대 아덴 공성전의 성공으로 리벤지혈맹은 오랜성을 차지했고, 제네시스혈맹은 아덴성을 소유하게 됐다. 그런데 처음부터 바츠동맹군의 선봉을 맡아 많은 희생을 치른 붉은혁명혈맹은 얻은 것이 없었다. 아덴성 각인을 함으로써 아덴성을 소유하게 된 제네시스혈맹은 바츠동맹군이라고는 하지만 불과 3주 전까지 지배연합군의 일원이었다.
제네시스혈맹은 제네시스혈맹대로 가장 병력이 많은 만큼 고생은 자기네가 다 했는데 이전에 지배연합군에 속해 있었다는 묘한 처지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양보했다고 억울해 했다. 이렇게 논리적으로는 납득해도 심정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데 따른 불만이 각 혈맹마다 쌓이기 시작했다.
혁명군의 분열과 역전
DK연합군이 아덴성에 이어 기란성마저 빼앗기고 오만의 탑 9층으로 퇴각하자 승리의 전리품을 둘러싼 각 혈맹간 갈등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 무렵 바츠동맹군 소속의 혈맹들이 약칭 ‘용던’이라는 안타라스의 동굴에서 부분적인 통제와 오토 행위를 한다는 비난이 일기 시작했다. 각 혈맹의 총군주들은 용던이라는 사냥터에 독점구역을 확보함으로써 성의 소유를 둘러싼 혈맹원들의 불만을 무마하려 했다. 그러나 이것은 바츠동맹군의 존립 기반을 뒤흔드는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애초에 바츠동맹군이 외친 ‘정의와 자유’의 구호는 매우 지시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때의 정의는 일반 사용자를 죽이고 오토 프로그램을 돌리며 게임의 룰을 일탈한 지배혈맹에 대한 정의였다. 또 이때의 자유는 어떤 사냥터든지 함께 게임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갈 수 있고 누구나 사냥할 수 있다는 의미의 자유였다.
그런 대의명분을 내세운 바츠동맹군이 지배혈맹과 똑같은 통제와 오토, 척살을 행했다. 그것은 그들을 지지해온 일반 사용자들의 신뢰를 뿌리째 배신하는 것이었다. 바츠동맹군의 전쟁 혈맹들은 자신의 혐의를 부정하고 상대방을 비난하면서 아직 완전히 섬멸되지 않은 적 앞에서 자중지란에 빠지고 말았다. 수세에 몰려 있던 DK연합군은 이때 새로 패치(patch)된 ‘오만의 탑’에 숨어 은인자중 힘을 기르고 있었다.
적의 무서운 잠재력을 외면한 바츠동맹군은 승리에 도취해 사분오열했다. 붉은혁명혈맹은 어제까지 동지였던 리벤지혈맹과 전쟁에 돌입했으며 곧이어 제네시스혈맹과도 전면전에 들어갔다. 그 결과 수적으로 열세에 몰린 붉은혁명혈맹은 과거의 주적이던 DK연합군과 제휴함으로써 바츠 해방에 참전한 사람들을 아연하게 만들었다.
“4혈도 나쁘지만 반4혈도 나쁘다”는 공감대가 바츠 서버에 유포되면서 아덴 공성전까지 일사불란하게 유지된 단합은 무너졌다. 내복단 역시 내복단을 빙자한 강도들, 즉 ‘제조’들이 등장하면서 도덕성을 믿을 수 없는 경계와 의혹의 대상이 됐다.
끝나지 않은 바츠 해방전쟁
바츠동맹군의 타락과 분열로 전세는 역전됐다. DK연합군은 조금씩 조금씩 빼앗긴 성들을 모두 탈환했으며 혁명군의 공성전을 성공적으로 방어했다. 그리하여 해가 바뀐 2005년 1월27일 DK혈맹은 다시 무제한 척살령을 발동했고 ‘리니지2’의 일반 사용자들은 바츠 해방의 꿈이 비참하게 좌절됐음을 확인해야 했다.
2005년 6월 현재 바츠 서버는 해방전쟁 이전의 참상으로 되돌아왔다. 사냥터에서 거치적거린다는 이유로 하루 저녁에 700명이 넘는 사용자가 지배혈맹에 의해 살해되고, 산발적인 소요가 일어나고, 그 결과 DK연합군이 사냥터의 오토 행위를 통해 만들어내는 바츠 서버의 아덴 가격은 폭등한다.
그러나 바츠 해방전쟁 스토리는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사용자들은, 미약하지만 아직도 자신이 하는 게임이 바츠 해방전쟁 절정기의 그 숭고한 감정을 실어 나르는 매체, 숭고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살아 있는 물건으로 변모하는 현상을 목격한다.
숭고란 뭔가 고귀하고 성스럽고 영웅적인 것이 자신의 눈앞에 현전(現前)하고 있다는 충격의 체험이다. 그것은 묘사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천지창조의 순간을 연상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리니지2’의 스토리는 날마다 놀랍고 비일상적이며 충격적인 순간, 묘사 불가능한 것이 일어나는 순간의 미학, 숭고의 미학에 의해 지배된다.
2005년 5월의 어느 날, 사용자들은 아직도 저항하고 있는 극소수 혈맹 가운데 한 파티가 용의 계곡에서 안타라스의 동굴로 출정하는 것을 본다. 시간은 이미 9시가 넘은 아침이다. 그 파티의 주인공들은 모두 밤을 새웠다. 수백명의 DK혈맹원과 벌인 간밤의 싸움에서 많은 혈맹원의 캐릭터가 더는 활동할 수 없는 봉인 상태에 이르렀다. 살아남은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은 D급 무기를 들고 있었다. 무수한 죽음으로 레벨이 30 이상 다운돼 무의미할 정도로 공격력이 낮은 무기를 들고, 옥쇄할 수밖에 없는 전쟁터로 묵묵히 떠나가는 것이다.
함께 파티 사냥을 하며 성장한 친구들은 대개 현실과 타협했다. 친구들은 저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친목혈’을 꾸려 군주가 되고 게임 안에서 편안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지배권력에 대한 저항의 길을 택한 혈맹원들은 사냥터도 없이 풍찬노숙하며 사방에서 공격받고 악명을 뒤집어쓴다. 외로운 나머지 따뜻한 말 한마디에 쉽게 정을 주었다가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이런 외로운 전사들이 묵묵히 전쟁터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광경은 ‘리니지2’의 사용자만이 이해하고 감지할 수 있는 ‘숭고’다. 이러한 순간 ‘리니지2’의 스토리는 위엄을 갖춘 희생자들, 최후에 승리하는 패배자들, 타락한 현실에 대해 선(善)을 주장하는 무법자들의 형이상학적이고 영웅적인 진실을 전달한다.
숭고한 체험, 귀환하지 않은 영웅들
일찍이 조셉 켑벨은 많은 스토리에서 잊을 수 없는 체험을 한 영웅이 평범한 인간 세상으로 귀환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영웅은 평범한 세계에서 ‘낯설고 특별한 세계’로 들어가 통과제의의 성격을 갖는 고통스런 체험을 한다. 그리고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그 세계로부터 어떤 물질적, 정신적 전리품을 들고 다시 평범한 세계로 돌아와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해준다.
그러나 이 같은 ‘분리-통과제의-귀환(seperation-initiation-return)’의 구도가 언제나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채우고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과 신비하고 정복되지 않는 힘과 불멸하는 우주의 그림자를 맛본 영웅은 삶을 너무 많이 보고 너무 깊이 본다. 그래서 그는 안일무사한 생활인의 세계, 평범한 인간의 세계로 돌아올 수 없는 것이다.
바츠 해방전쟁의 스토리를 체험한 상당수 ‘리니지2’ 사용자야말로 귀환하지 않는 영웅이다. 그 전쟁은 현실 시간으로는 12개월에 불과하지만 30분이 하루인 ‘리니지2’의 가상현실에서는 무려 48년 동안 계속됐다. 서버를 초월해 모든 ‘리니지2’ 사용자가 숨죽이고 전쟁의 추이를 관찰했으며 그 고귀한 희생은 많은 이의 심금을 울렸고 그 허무한 결말은 사용자들 사이에 절망과 냉소주의를 유포했다.
온라인 게임 스토리만이 줄 수 있는 이 같은 서사적 감동과 사상적 깊이를 체험한 사람들은 두번 다시 예전과 같은 사람일 수가 없다. 그들은 ‘폐인’이라는 조롱을 웃어넘기며 온라인 게임이 만든 매트릭스로 날마다 들어간다. 이 귀환하지 않는 영웅들이 어떻게 현실로 돌아와 세계를 복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가상현실과 현실의 융합이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른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깊이 고려해야 할 지점이다. (끝)
부산에서 올라온 부모님, 동생과 인천공항에서 상봉했다. 저녁 비행기를 타고 울란바타르로 출발~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광경 중 하나인 '비행기 안에서 바라보는 성층권에서의 해넘이'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단 기대로 두근거렸다. 역시나!! 몽골이 북서쪽에 있는 고로 인천에서 출발할 때는 이미 캄캄해졌었으나 지구 자전방향과 반대로 나아감에 따라 하늘이 점차 밝아졌다. 만세! 카메라로 얼른 찍었으나 창에 반사되어 아무것도 찍히지 않아서 그저 뇌세포에 각인시켜두는 수밖에 없었다. 약간의 비행공포증이 있어서 이착륙시에 되도록 딴생각-내가 지금 죽으면 나오는 보험금이 얼마인지 등-을 하는데, 그 대가로 지상에선 결코 경험할 수 없는 하늘색의 아름다운 그라데이션을 감상할 수 있으니 괜찮은 거래인 편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해외로 나갈땐 외국 항공사 이용을 매우 좋아하는 편인데 이번엔 패키지식이어서 대한항공이었단 거. 여행의 시작은 비행기 타면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럴려면 그쪽 문화를 바로 느끼면서 출발할 수 있도록 국적기 이용은 되도록 자제해야한다. 가격도 훨씬 싸고!!
[인천공항에서 이륙하기 전 착석 후 바로 찰칵]
3시간 남짓 날아가니 울란바타르의 징기스칸 공항에 도착했다. 일본이나 중국보단 조금 멀지만 겨우 1~5시간 정도만 날아가면 동북/동남 아시아 땅은 쉽게 밟는다. 간혹 한번도 나가보지 않으신 분들이 해외여행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시던데 알고보면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약간의 시간만 비행하면 완전히 다른 세상에 몸담을 수 있다는 거~ 글로벌한 마인드를 가지라고 권하고프다.
기내식은, 우움 -_- 엄만 해물, 난 치킨이었는데 둘 다 맛이 그저그랬다. 와인 두 잔 마신 것 외엔 실익이 없었다. 동생은 닌텐도를 부르짖었는데, 그건 싱가폴 항공만의 화려한(?) 서비스였달까;; 싱가폴로 가는 비행 내내 좌석 앞에 달려있는 화면을 보며 리모콘으로 닌텐도 게임을 맘껏 즐겼던 황홀한 기억을 잊지 못하는 듯 했다. 5시간 이상 비행하는 대한항공에도 혹 있을지 모른다.
[징기스칸 공항의 외부]
차 3대에 나눠타고 꽤 한참을 달렸다. 아스팔트도 여기저기 패여있어서 익숙치 않은 덜컹거림에 몸이 좀 힘들었는데, 나중엔 아예 완전 비포장 도로로 접어들더라. 중앙선쯤으로 여길 수 있는 선이나 화단 등의 구조물을 제외하고는 차선이 없었다.....그저 막 달리더라. 운전석도 오른쪽 왼쪽 제멋대로다. 도로체계는 대륙형으로 우리와 같은 방향이었지만 섬나라에서 들여온 차는 오른쪽에 운전석이, 대륙쪽에서 들여온 차는 왼쪽에 운전석이 있었는데 개조같은 건 안하고 있는 그대로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너무 그대로라서 명박이 사업 이후 들여온 것이 분명한 우리나라 버스(지선-파랑, 간선-초록)에는 번호만 자기네 체계에 맞게 고치고 나머지 노선은 한글로 선명하게 압구정, 구파발 어쩌고 등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차체 뒤에도, 옆에도! 여기서 저거 타면 압구정 가는거야? 움직이는 차 안이라서 안타깝게도 증거 사진 찍질 못했다. 첨에 볼 땐 되게 웃겼는데 그런 차가 한두대가 아니어서 나중엔 그러려니 싶더라.
여튼 아래 숙소에 도착하여 첫날밤을 보내게 되었다. 울란바타르 야경이 보이는 언덕 위의 집. 물 부족 국가라고 들었기에 나름 아껴쓰려고 애썼다. 기온도 낮아서 긴팔 옷에 이불 두 겹 두르고 히터까지 켠 채로 잠이 듦......
대지를 조작하고, 로코 로코라고 하는 자유 제멋대로인 생물을 유도해 나가는 액션 게임이 등장. 플레이어는 혹성이 되어, 자신에게 붙어 사는 로코 로코를 수수께끼의 침략자로부터 구출해 낸다. 로코 로코를 유도하려면, 기본적으로 L, R버튼의 둘만을 사용한다. 두 버튼을 구사해, 지면을 기울이거나 흔들어 로코 로코를 골로 이끌자.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로코 로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마음대로 돌아다녀버린다. 지면을 조작해, 그들을 이끈다.
▲LR버튼으로, 지면을 좌우에 기울여 대굴대굴 굴리자.
▲LR버튼 동시 누르기로, 로코 로코를 뛰게 할 수 있다.
▲몸이 커서, 들어가지 못할 듯한 좁은 장소는 ○버튼으로 분열하여, 작게되어서 통과한다. 모였다가 다시 ○버튼을 누르면 합체다.
LocoRoco SCE 대응기종 : 플레이 스테이션 포터블 발매일 : 2006년 발매예정 가격 : 가격미정 장르 : 액션 / 코믹컬 비고 : 디렉터=코노 츠토무
이런 젠장할, 아직 PSP A/S 못받았는데....ㅜ.ㅠ 괴혼 PSP 판도 손도 못댄 마당에 이것까지 출시되면 나는 어떡해. 수리를 받는다면 시험인생 조낸 종치는게닭. 괴혼은 UMD 용량 한계로 배경이 무미건조하다는 단점이 있다는 '얘기만 전해들었..' 타이틀은 구비했으되 몇개월째 수리 맡기러 가지 않아 1.5 버전 유지중이어서 단한번도 플레이를 못해봤다는. 로코로코는 중독성이 거의 히로뽕 수준인 듯.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여자친구를 반드시 빼앗기게 되는' 무시무시한 게임이라고 한다. 나는 여자인데다 싱글이 되었으니 마음껏 로코로코에 몸바쳐도 좋겠지만, 단한가지 맘에 걸리는 것은 '공부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