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숙소
저렴한 민박에서부터 체인인 리조트, 럭셔리한 풀빌라에 이르기까지 여러 숙소를 전전해왔으나 게스트하우스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책닦는 남자' 라는 오픈한지 한달밖에 되지 않은 곳이었는데, 마침 2인실이 두개에 화장실도 각각 따로 달려있는데다 예약이 가능했던(..) 유일한 곳이어서 서둘러 정하게 되었다. 아직 다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풋풋함이 더 신선했달까. 기지넘치는 인테리어에 단순하고 깔끔한 침실, 라텍스 매트에 바스락거리는 구스이불 굿굿. 만화가를 꿈꾸다 다시 동화작가가 되고자 서울서 내려오신 사장님은 이력답게 벽면 가득 만화책과 책으로 가득 채워놓으셨고 남자 도미토리에는 건담 피규어들이 득시글ㅎ
손님이 우리 일행밖에 없어 거의 독채처럼 사용했는데, 11시 소등 원칙도 때문에 다함께 어기고 새벽두시까지 옆집 Maison de Mei 라는 독채펜션 및 까페 사장님까지 합세하여 알콜이 가미된 이야기꽃을 피웠다. 옆집 사장님이 직접 잡아온 문어를 삶아먹고 생낙지를 안주삼아 맥주 드링킹. 새로운 분들의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재미에 밤이 깊어가는 것도 몰랐다. 그다음날은 스텦분의 정성어린 맛좋은 오뎅탕에 소주로 다시 수다 삼매경을...낮엔 옆집 사모님까지 착석시킨 후 가져간 보드게임으로 떠들떠들.
이것이 게스트하우스의 묘미구나 싶어 지금껏 게하에서 묵어볼 생각을 못한 것이 아쉬웠다.
제주도의 먹거리
두 사장님 덕에 현지인들의 진정한 맛집 정보를 잔뜩 얻었다.
- 별방촌 : 이렇게 맛있는 해물뚝배기는 처음!! 별것없어 보인 회덮밥도 진심 맛있었다.
- 평대스낵 : 이미 인터넷을 장악한 소문의 평대스낵. 튀김도 맛있었지만 색다른 매콤함의 떡볶이가 최강.
- 곰막 : 여기도 이미 유명세. 방어건 고등어건 회 한접시에 2만원인 가격적 이점도 이점이지만 회국수와 성게국수가 최고다.
- 명진전복 : 최소 대기시간 30분을 자랑하는 식당. 전복회와 전복구이, 전복돌솥밥. 가격은 조금 있는 편이지만 전혀 아깝지 않은 맛이다.
- 해맞이쉼터 : 여긴 추천받은 곳은 아니지만 지나치다가 사람들 줄서있는 것을 보고 충동적으로 들어가 해산물라면 드링킹. 전복집에서 살짝 부족하게 먹었던 터라 라면 세그릇을 디저트삼아 먹었다. 풀무원 짬뽕라면 베이스에 꽃게 또는 전복과 온갖 해산물을 가득 넣어 끓인터라 국물맛이 없을수가 없음. 다른 테이블의 파전도 구경했는데 두껍기가 예전 학교앞의 3대째하는 동래파전 포스가 그대로 느껴질만큼 두터웠다.
- 이런날엔 : 요즘 월정리가 까페촌으로 엄청 떴다기에 가봤는데, 특색있는 곳은 제일 처음 생겼다던 고래가 될 까페 밖
에 없었고 나머진 다 도시 해변가에서 볼수있는 고만고만한 곳들. 사람도 너무 많아서 까페촌은 별로였다. 물론 자연은 최고지....추워도 해변가에서 조금 노닐다가 다시 한동리쪽으로 빽했다. 오는 길에 봤던 조용한 장소에 외따로 떨어진 까페들을 가고 싶었거든.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외관부터 멋진 이런날엔. 나중에 알고보니 홍대 건축과 교수가 설계했더라. 내부도 그림같은데, 바다조망이 쉽도록 자리가 배치되있고 벽마감은 노출콘크리트. 노출콘크리트 성애자는 그저 만족합니다ㅎㅎ차 말고도 식사도 팔고 있었는데 사장님이 조선호텔 셰프 출신이더만. 우리말곤 다 식사 손님이었다. 다음엔 꼭꼭!!
- 탐라우육 : 흑돼지가 제대로라고 사장님들께서 알려주신 곳이다. 출발직전 저녁으로 먹을까했는데 도저히 배에 여유가 없어서 고기만 사가기로 결정. 정육식당이라서 진공포장이 가능하다. 제주공항 근처이고 오겹살 200g당 7천원이다. 상차림비는 한상에 만원 받는다고 하시네. 오늘 저녁에 칼집내어 구워먹을 예정이라 아직 맛은 모름..ㅋㅋ
그 외에도 이스트엔드 라는 프랑스요릿집(저녁만 영업해서 못가봄), 제현?재현?식당의 백반, 다래향의 탕수육, 어등포 해녀촌의 우럭정식과 튀김 등도 알려주셨는데 일정이 짧아 못가봤다. 담번엔 꼭! 게다가 메이 사장님의 커피가 일품이라고 들었는데(가격도 싸고!) 미처 가보질 못했기에 담에 내려와서는 꼭 들르겠다 다짐다짐ㅎㅎ
제주도의 볼거리
지금껏 제주도를 꽤 많이 간 편이라 웬만한 관광지는 가본 듯 싶다. 사실 이번 여행은 둘만의 오붓하고도 정적인 시간 보내기가 컨셉이었던 터라 바다가 보이는 까페에 죽치고 앉아 책도 읽고 영화도 보려했었으나 동생 가족과의 조우로 인해 식도락 여행이 되었음...그것도 좋지만ㅎ 제부가 10년만에 처음 온 제주도라 관광지를 여러곳 가고싶기도 했으나 비오고 바람부는 추운 날씨가 계속되어 조카의 건강이 염려되는지라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해 안타까웠다.
성산일출봉은 그냥 바라만 보고 스벅에서 커피마신 것이 끝.
이번에 처음 가본 김영갑갤러리는 규모는 작은 편이었지만 가장 인상에 남는 곳이었다. 폐교를 개조하여 꾸민 갤러리의 소박함이 좋았고 당연히 안에 걸려있던 제주의 풍경을 담은 사진들은 단순히 좋은 것을 넘어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루게릭병으로 인해 와병중에 쓰신 글들....산과 들을 누비며 사진찍던 그 과거의 행복함을 늦게 알았지만 그마저도 집착이었음을 병을 통해 깨닫게 되어 평온을 되찾으셨다는 작가의 글에 울컥했다. 구름도 매일이 다르듯 자신에게 엄습하는 통증 또한 매일이 다르다. 다음날은 또 어떠할까. 고통에 겨워 생을 원망하기 보다는 다시한번 성찰의 기회로 삼고 갤러리를 만들며 조용히 죽음을 준비하셨던 그분의 사진은 그래서 남다른 감회가 더한 것 같다. 엽서 한장씩을 입장권 대신 주고, 사진 및 엽서 등을 팔기도 하는데 가장 마음에 드는 세트로 하나 골라 사왔다. 익숙한 듯 익숙치 않은 제주 풍경이 어딘가 현실과 동떨어져있다는 느낌이 들어 아름다우면서도 스산하기도 하고 바람이 들리기도 한다.
"움직일 수 없게 되니까, 욕심 부릴 수 없게 되니까 비로소 평화를 느낀다.
때가 되면 떠날 것이고, 나머지는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철들면 죽는 게 인생. 여한 없다. 원 없이 사진찍었고, 남김없이 치열하게 살았다."
< 출처 : 김영갑갤러리두모악 홈페이지 www.dumoak.com >
섭지코지는 입구에 잠깐 갔었는데 돌아다니던 곳 중 유채꽃이 가장 넓은 면적에 피어있었다. 동네 구비구비 밭두렁에 핀 유채꽃들도 물론 좋았지만. 들어가서 걸을 엄두가 안나 돌아나온 것이 못내 아쉽다. 내가 제주에서 제일 좋아하는 섭지코지. 지니어스로사이.
공항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부러 산자락길을 선택했기에 산굼부리와 사려니숲길 등을 지나치며 아쉬워했다. 예전에 다 가본 곳이지만 계절에 따라 날에 따라 모습과 느낌은 늘 다를테니 가도가도 가고싶으니.
다음에는 알려지지 않은 조그마한 오름들을 가볼까 한다. 거문오름, 한라산 등반과 같이 거창한 여행과는 다른 묘미를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