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날

현재 2015. 7. 22. 03:17

뭐, 저녁까진 그럭저럭 다른 날과 비슷했다.

후텁지근하지만 그렇게 덥지는 않고 그렇다고 상쾌하지도 않은 밤을 가계부와 씨름하고 있을 때 문득 걸려온 전화.

얼굴은 알고, 성인이 되어서는 우연히 친구 병원에서 한번 마주쳐서 몇마디 나눠보았을 뿐인 초등학교 동창.

자살했다고 한다.

서 유미자.

일본에서 살다 6학년 무렵엔가 한국으로 이사와 우리집과 한블럭 떨어진 일본식 가옥에 살던 아이.

서툰 한국어가 귀엽다고 생각했던 기억을 마지막으로 영영 잊혀지나 싶었는데 아마도 재작년 초등학교 동창의 병원에서 어른으로서 마주쳤지. 공통분모인 친구를 화제삼아 몇마디 나눴을 때 다이어트 약을 처방받으러 종종 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릴 때의 이미지는 온전히 사라지고 마르고 다소 우울해 보이던 말투.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을 두고 그렇게 가야만 했던 이유가 뭘까.

우울증이었나 보다 라고 넘어가기엔 완전히 남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남이 아니기에 묵직히 울려오는 죽음의 무게가 느껴진다.

귀엽기만 하던 어린아이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쓴 임신과 결혼을 겪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여만 했던 종착으로 오게된 삶. 빈소에는 친지 친구조차도 적어 적막만이 흐르더란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나의 애도가 무슨 큰 의미가 있겠냐만은 편안히 잠들기를 기도해본다.


전화를 끊고 한시간쯤 되었을까,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이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술을 꽤 드셨다. 회사앞에 있으니 오면 좋겠다고. 신세진 것이 많아 굳이 또 나갔다. 회사에 몇 남지 않은 여자평가사...중간기수가 다 나가고 나마저 휴직인데다 바로 밑기수도 나가고 아주 아랫 기수들만 좀 남았다. 많이 챙겨주시고 배려해주셨는데 그게 마음의 빚으로 남아 나가고 싶은 마음을 백프로 어필하지 못하고 꾸역꾸역 회사에 남아있게 되었다. 지금의 상황이 갑갑하지만 돌파구를 못찾겠다.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때문에 원치 않는 인생의 방향으로 결정하긴 싫은데. 물만 마시다 한시간만에 돌아왔다.


돌아오니 아파트에선 화재경보기가 울리고 있다. 그런데 아무도 반응하고 있지 않는다. 집에 들어가니 깜쪽같이 소리가 나지 않네. 이러면 경보기의 의미가 무엇? 남편도 모르고 있다가 좀 놀랐다. 소방차 소리가 잠깐 들리는 듯 하더니 경보기 소리가 꺼졌다. 나가기 직전에 수돗물이 나오지 않던 상황과 관련이 있는걸까?


뭔가 일어날법하지 않은 일들이 연이어 일어난 하루...도 아닌 밤이라 마음이 좀 뒤숭숭하다.

안그래도 내일 신경쓰이는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덥고 갑갑한 밤이다.


Posted by skyw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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