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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격 통보 후 실의에 빠져있던 지난 주말, 잠들지 못하던 밤 12시에 벌떡 일어나 사얌과 룡의 합작 서폿으로 전송되어 온 '지금 거기에 있는 나' 보기 시작, 13화로 완결인 것을 파일 전송 오류있던 6, 11화 빼고 다 보다. 그 두 화는 오늘 룡이 다시 보내줘서 방금 완성. 감독이 '개그만화보기좋은날', '마사루', '괴짜가족', '후르츠바스켓', '아따맘마' 등의 감독이기도 하다니, 다...당신 뭐하시는분? @.@// 콜록콜록

사얌의 추천물 중 몇몇은 예상치 못한 전환의 기쁨을 선사했었는데, 이젠 꽤 단련이 되었는지 아무리 시작이 미미하다 여겨져도 곧 광명이 비추리라 두근해하며 보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 문턱을 못넘은 봉신연의와 은혼, 지못미ㅠ

'스파이럴'은 그저그런 유치학원물인 줄 알았으나.....
'쓰르라미 울적에'는 남성취향 하렘물인 줄 알았으나.....
'지어스'는 초중딩의 방학 스펙타클인 줄 알았으나.....
'지금 거기에 있는 나'도 병적으로 과장낙천 전형적 히어로의 검도가하고싶어효안선생님;; 울부짖는 스포츠물인 줄 알았으나....

99년작이어서 그런지 조금은 옛스런 화면으로 시작하는 '지금...'은 전혀 예상못한 군국주의 비판이 주제인 SF물이다. 애니 속의 헤이우드 병사들의 제복이며 저지르는 만행 등이 과거 일본의 그것과 흡사하고, 그 잔혹성과 비참함을 담담하게 그려내어 옛 일본의 군국주의를 비판하고 반성한다. 시공간과 주체를 달리하여 오히려 다큐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할 수 있게 하는 수단으로서 SF만큼 유용한 것은 없을 것이다. 반딧불의 묘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나는 이사오 감독이 '일본도 피해자다'라기 보다는 '전쟁의 폐혜 자체'를 보여줌으로써 전쟁의 주동자가 누가됐든 평화로운 일반 다수의 삶을 파괴한 그들을 비판했다고 본다. 반딧불의 묘 역시 살짝 시공간을 비튼 곳에서의 유사상황을 그려내었더라면 오해의 소지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조금이라도 제정신인 윗대가리였다면 헤이우드의 운명이 달라졌을지도. 권력욕에 미쳐버린 독재자 하나 때문이다, 라고 하기엔 애니라는 한계에서 스토리의 단순화를 위한 것이었을 수도 있고, 어차피 인간은 다수가 모일수록 바보가 되는 게 사실이라니까. 방향성은 좀 다르더라도 말아먹히고 있는 나라꼴은 MB와 하무도의 유사성에 기인. '그들만의 대의'를 위해 약자의 인권과 환경 따위 밟는 게 낙인거죠.

초월적 존재인 라라루는 그 펜던트하며, 라퓨타에서의 라라가 몇배 더 심오하게 발전된 케이스라 할 수 있었고, 엉겁결에 끌려온 사라는 비참한 캐릭에서 용기있는 자로 거듭나서 그나마 안도한,,근데 미국인이면서 일어 네이티브야-0-(이런거에 신경쓰면 지는건가;;) 게다가 슈 이놈은 어딜 갖다놔도 고민도 없고 기죽지도 않고 온리 '라라루!'를 외쳐대니 이것은 라라루 나이가 지구나이만큼 되어서 생긴 마성인가. 렛미인의 뱀파이어 소녀도 그렇고, '오래 살았는데' + '소녀의 외양' = 남자를 제대로 낚는다.

현재보다 몇배 더 큰 태양은 적색거성 단계 진입인것 같아 지구의 미래상 같건만, 달조차 하늘을 압도하니 모르겠어....달은 지구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데, 그럼 과거? 사실 미래건 과거건 지구건 아니건 상관없는 얘기긴 하지. 그저 'そこ'로 족한. 다시 ここ로 돌아온 슈의 표정이 어떠했건 간에 이젠 각자의 세계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또 살아가는 것만 남았다. 매화 보여지던 엔딩 화면이 13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라는 연출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고.

이런 굉장한 작품이 이렇게나 묻혀있다는 것이 놀랍다. 친구들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고요. 감독님도 감사하고요. 근데 이거보다가 개그만화일화 보면 전혀 매치안돼.


라라루의 마지막. 인간에 대해 실망만 거듭하던 그녀가 생각을 고쳐먹고 지구에 물이 가득차게 한 뒤 자신은 소멸한다. 언젠가 또 함께 노을을 보자는 말만 남긴 채. 그래서 엔딩으로 이 세계로 돌아온 슈가 노을을 바라보는..


Posted by skyw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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